볼티모어급 순양함(Baltimore Class Cruiser)

볼티모어급 순양함 8번 함인 CA-75 헬레나(Helena).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인천상륙작전 등을 비롯한 수많은 작전에서 활약하였다.

1918년, 마침내 제1차 대전이 끝났다. 비록 20여 년 후에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더 큰 비극이 닥치지만, 상상도 못한 초유의 참화에 인류가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다. 다시 이런 전쟁이 재발되어선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종전 후 많은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1921년 11월 논의가 시작되어 이듬해 2월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Washington Naval Treaty)’이었다.

전쟁 전에 있었던 열강들의 치열한 주력함 보유 경쟁이 제1차 대전 발발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었기에 협상이 곧바로 개시될 수 있었다. 서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눈치싸움과 치열한 갑론을박 끝에 각국별로 보유할 수 있는 주력함의 수량과 성능을 제한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타결 내용 중에는 전쟁 당시에 전함보다 더 많은 역할을 담당했던 순양함(Cruiser)에 대한 규정도 있었다.

함포의 구경이 최대 8인치(203mm), 최대배수량은 10,000톤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구체적 제한이 정해졌고, 이후 이에 맞춰 건조된 이른바 전간기(戰間期) 순양함들은 보편적으로 화력에 비해 방어력이 상당히 취약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류는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희망했지만, 1934년 대외 팽창에 혈안이 되었던 일본이 일방적으로 조약을 파기하면서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35년, 일본 해군이 취역시킨 배수량 13,000톤 규모의 중순양함 모가미(最上)를 신호탄으로 조약의 제한을 넘는 화력과 방어력을 갖춘 새로운 순양함들이 속속 등장했다. 총 14척이 건조되었고 이후 연이어 등장한 여러 후속 함들의 베이스가 되기도 했던 미국의 볼티모어급(Baltimore class) 순양함도 그러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중(重)순양함이다.

14척이 건조된 볼티모어급 순양함은 미국이 전쟁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은 1943년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배치되었다. 때문에 CA-131 폴리버(Fall River)함처럼 불과 27개월만 활약하고 퇴역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출처: (cc) Wikimaster97commons at Wikimedia.org>

깨져버린 잠시간의 평화

태평양은 거대하지만 중간이 텅 빈 백지와 다름없어 해군력이 강하다면 쉽게 대양 전체를 앞마당으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세계 3위의 해군력을 보유한 일본은 지도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미국에게 상당히 거북한 존재였다. 미국은 세계 1위의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대서양에도 전력을 분산시키다 보니 태평양만 놓고 보면 오히려 일본에게 열세인 상황이었다.

해군 군축 조약 파기 후 일본이 건조한 배수량 13,000톤 규모의 중순양함 모가미(最上). 조약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지만 일본의 이러한 도발적 행태는 새로운 건함 경쟁을 촉발시켰다.

일본의 군축 조약 파기 선언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미국은 즉시 전력 증강에 나서야 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1939년, 마침내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상황은 더욱 다급해졌다. 미 해군은 군축 조약에 맞춰 설계가 완료되어 한창 건조 중이던 CA-45 위치타(Wichita)의 후속 건함을 취소하고 위치타보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강화된 새로운 중순양함 개발에 착수했다.

새로운 중순양함은 8인치 주포 9문은 동일하지만, 위치타에 8문만 장착된 5인치 부포를 12문으로 늘려 공격력을 증강시켰다. 6인치로 대폭 강화된 측면 장갑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방어력을 늘렸고, 여기에 더해 48문의 보포스 40mm포와 24문의 오리콘 20mm포를 탑재해 대공 방어 능력도 대폭 향상시켰다. 덕분에 배수량이 14,500톤까지 늘어났음에도 날렵한 유선형 구조를 택하여 최고 33노트의 고속 순항이 가능했다.

캐터펄트 위에 2기의 OS2U 다목적 수상기를 탑재한 CA-71 퀸시함의 선미 부분. 강화된 무장과 방어력, 장비 덕분에 다양한 작전에 투입이 가능하였다.

달라진 해전의 모습

검토를 마친 미 해군은 1940년 7월 1일, 4척을 발주했고 이듬해 5월 26일, 1번 함인 CA-68 볼티모어를 시작으로 건조를 개시했다. 그해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급습을 받고 전쟁에 뛰어든 미국은 곧바로 전시 체제로 전환했고 볼티모어급 순양함도 17척 획득을 목표로 계획이 대폭 변경되면서 추가 발주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제작된 항공모함 같은 여타 함정들에 비해, 볼티모어급의 제작은 상당히 더딘 편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해전의 모습이 예전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거포로 함대함 대결을 벌이는 전함, 중순양함 같은 주력함의 역할은 줄어들었고 항공모함과 이를 가까이서 호위하는 날렵한 경순양함과 구축함의 역할이 커진 것이었다.

1951년 재취역을 위해 개장 공사를 하는 CA-68 볼티모어. 제2차 대전 당시 활약한 미 해군 주력 중순양함의 선도함이다.

결국 볼티모어급 순양함은 1943년 4월부터 차례차례 취역해 전선으로 달려갔으나 애초에 예정된 17척 중 1945년 종전까지 전선에서 활약한 함정은 9척이었다. 더구나 대부분이 미국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1944년 이후에 투입되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CA-133 톨레도(Toledo) 같은 경우는 초도함 볼티모어가 1차 퇴역한 이후인 1946년 10월에 취역하기도 했다.

볼티모어급을 기반으로 연돌을 하나로 단순화하고 갑판 상부를 효율적으로 개량한 중순양함이 오리건시티급(Oregon City class)인데,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에야 취역했고 애초 계획된 10척 중 4척만 완공되었다. 또한 볼티모어급의 최종 개량형인 디모인급(Des Moines class)도 총 12척 획득을 목표로 전쟁 말기인 1945년부터 건조에 들어갔지만 단지 3척만 취역할 수 있었다. 거함거포주의1)의 퇴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리건시티급 4번 함인 CA-124 로체스터. 볼티모어급을 개량한 오리건시티급은 연돌이 하나여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한국과의 인연

이처럼 이후에 등장한 여러 후속함들의 베이스가 되기도 했던 볼티모어급은 최종적으로 14척만 건조되어 제2차 대전 당시 미 해군의 주력 중순양함으로 활약했으나 1949년 이후 5척을 남기고 모두 퇴역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부는 다시 현역으로 전환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총 6척이 번갈아 한반도 인근에 투입되어 상륙 작전, 해상 철수, 화력 지원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평양에 위치한 군사 박물관의 선전물. 북한은 참전한 사실도 없는 볼티모어함을 격침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개전 초부터 UN군이 제해권을 장악했기에 해전다운 해전이 없었으므로 이들 순양함들은 대부분 대지상 포격 작전에 참여했다. 그런데 북한은 1950년 7월 2일 벌어진 주문진항 해전에서 어뢰정으로 볼티모어함을 격침시켰다는 주장을 현재도 펼치고 있다. 소규모 해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볼티모어함은 당시 미국 본토에 퇴역 상태로 정박 중이었고 1951년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한국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다.2)

아름다운 미담 사례도 있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에 포격 지원으로 중공군 남하를 저지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우고 이듬해 1월 인천항 탈환 작전에 투입된 CA-73 세인트폴(St. Paul)은 인근 작약도에 고립된 45명의 전쟁고아들을 발견하고 구휼 활동을 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도움을 경험한 고아가 당시를 회고한 수기를 보면 세인트폴은 군함이 아닌 천사의 배로 묘사되어 있을 정도다.

월남전 당시 8인치 주포를 발사하는 CA-73 세인트폴. 한국전쟁 당시 섬에 고립된 고아들을 도와주는 선행을 벌이기도 하였다.

드러나지 않게 활약하다

이처럼 많은 동급 함들이 한국전쟁에서 활약하는 동안, 4척이 함대공 미사일로 대공 방어 능력을 대폭 향상한 새로운 시대의 중순양함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오늘날 이지스 구축함의 시작점이라 할 수도 있는데, 크게 보스턴급(Boston class) 2척과 앨버니급(Albany class) 2척으로 구분이 된다. 이렇게 개장된 함들은 1960년대까지 활약했으며 그중 CA-136 시카고(Chicago)는 1980년에야 은퇴했다.

최초에 CA-69로 취역한 보스턴함은 미사일 운용이 가능하도록 개장한 뒤 1955년 CAG-1 함번을 부여받고 재취역하였다. 이후 CAG-2 캔버라함(구 CA-70)과 더불어 보스턴급으로 별도로 구분된다.

앞서 알아본 것처럼 볼티모어급 순양함들은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계획되어 제2차 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등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지상군 화력지원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사실 지금도 제한적인 화력 투사 능력만 본다면 거포를 장비한 전함이나 중순양함보다 강력한 플랫폼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점이 전함이나 중순양함 같은 거대한 군함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하던 때여서 주로 조연의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양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제2차 대전 당시에는 항공모함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고, 이후 미사일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해군의 시대에 들어서서는 단지 그런 시도를 처음 실시한 덩치만 큰 구닥다리로 취급을 받았다. 이처럼 볼티모어급 순양함은 해군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을 장식했음에도 무관심과 푸대접 속에서 티 나지 않게 제 역할을 다한 대표적 무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1945년 2월 14일 이집트를 방문한 CA-71 퀸시함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인 이븐 사우드를 초대하여 회담 중인 루즈벨트 대통령. 이처럼 역사적인 회담의 무대로도 사용되었다.

제원

배수량 17,000톤(만재) / 길이 205.26m / 폭 21.59m / 속력 33.5노트(시속 61km) / 무장 8인치 55구경장 함포 9문(3연장 3포탑), 5인치 38구경장 함포 12문(2연장 6포탑), 40mm 보포스포 48문, 20mm 오리콘포 24문

▌ 주석

1)

대규모의 함정과 대포를 장비한 함대를 작전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긴 해군의 군사 사상.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출현하기 이전, 사정거리가 긴 거대 함포를 탑재할 수 있는 대규모 전함이 적 함대를 공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이론에서 출발했다.

2)

볼티모어급 순양함 헬레나 등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선도함 ‘볼티모어’는 참전하지 않았다.